1.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 그리고 부조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탐구한 걸작이다. 1947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당시 유럽이 겪었던 전쟁과 고통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렬한 울림을 준다.
이 소설의 배경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가상의 도시다.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던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들끓는 쥐 떼의 출현과 함께 정체불명의 전염병에 휩싸인다. 초기에는 가벼운 이상 현상으로 여겨지지만, 곧 도시 전체가 차단되면서 주민들은 극한의 공포와 고립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히 페스트라는 질병의 확산을 넘어,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행동을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2. 대응과 상징
『페스트』는 부조리 철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카뮈는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에서도 부조리 개념을 깊이 탐구했지만, 『페스트』에서는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연대’와 ‘책임’을 강조한다.
소설의 주요 인물인 이외 의사는 그 어떤 이념이나 신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의무를 다할 뿐이다. 그는 페스트와 맞서 싸우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결국 무의미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페스트가 상징하는 바는 첫째, 전쟁과 폭력의 은유로써, 소설이 발표된 1947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이 인간 사회를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를 암시했다. 실제로 오랑의 시민들이 처음에는 페스트를 부정하다가 점점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무기력해지는 과정은 전쟁을 겪은 유럽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두 번째, 부조리한 삶의 상황으로 카뮈는 인간이 예상치 못한 재난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페스트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을 의미하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세째로, 인간 내부의 도덕적 선택을 상징하는데, 소설 속에서 페스트는 악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페스트를 내면에 품고 있으며, 언제든지 그것이 발현될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악을 어떻게 다루고, 극복할 것인가이다.
3. 지금 우리의 이야기
『페스트』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이 현대에도 큰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팬데믹 상황을 떠올려 보면, 우리는 오랑의 시민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보였다. 처음에는 부정과 회피, 이후에는 공포와 단절, 마지막으로는 체념과 적응의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의료진과 필수 노동자들은 리외처럼 자신의 역할을 다했고, 타루처럼 연대와 희생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며, 우리는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리외와 타루가 보여준 태도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삶은 언제든 예상치 못한 고난과 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고난 앞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단순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동이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는 점을 이 소설은 강조한다.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상의 부조리와 악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적 탐구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가구와 옷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언젠가 다시 인간 사회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카뮈가 던진 이 마지막 경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